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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by 건강을위한 2020.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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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이 책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작가인 아툴 가완디의 2003년 저서입니다.

 

아툴 가완디는 당시 보스턴의 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The NewYorker> 지의 의학 및 과학 담당 고정 필자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의사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병원환경에 익숙했고, 글을 쓰는데 재주가 있는 똑똑한 학생이었지요. 하버드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 보건대학에서 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일간지 등에 기고하던 중 유명한 말콤 글래드웰(<블링크>의 저자)의 추천을 받아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들어가는 말부터가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모르는가?” 

 

의학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일입니다. 수많은 혈액 검사와 검사장비들은 과학적 수단이지만, 결국 어떤 검사를 할지,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사람’인 의사에게 달려있는 것이지요.

의학은 지식과 처치가 질서 정연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과학, 계속 변하는 때로는 불확실한 정보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현재에 가장 근거 있는’, ‘현재까지 나와있는 방법 중 가장 적합한’과 같은 말들을 많이 씁니다. 어느 순간 의사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이 아니라고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지식의 반감기>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반으로 붕괴되는 반감기를 가지는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절반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는 데 걸리는 시간인 ‘지식의 반감기’를 고찰하는 내용입니다. 

분야별로 이러한 ‘지식의 반감기’는 차이가 있는데, 물리학은 13.07년, 경제학은 9.38년, 수학은 9.17년, 종교학은 8.76년, 심리학은 7.15년.. 과 같은 식입니다.

학생 시절 교수님께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너희가 지금 배우고 있는 내용은 10년 뒤에는 거짓말이 되거나 새로운 지식과 기술에 밀려날 거야”라고요. 

 

아툴 가완디는 의사인 ‘사람’이 행할 오류 가능성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으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들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오류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 말입니다.

최근까지도 병변이 있는 부위가 아닌 다른 부위를 수술 또는 시술하는 일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쉽게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수술 부위에 L(좌측), R(우측)을 주치의가 직접 쓰고, 환자에게 병변의 위치를 주지 시키고, 수술장에서는 수술 부위가 어느 쪽이고 어떤 수술을 할 거라고 주치의가 복창하면 다른 스탭이 소리 내어 확인합니다.

 

수술 시에는 드물지만 외래 진료 시에는 동명이인의 환자로 잘못 접수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진료차트를 보면서 이전 내용을 확인하는데(이전에 간수치 이상이 있었는데, 술은 좀 줄이셨는지?) 본인의 내용이 아니라고(난 술을 못 마시고, 간수치는 이상 있다고 들은 적이 없다) 해서 확인해보면 다른 환자의 차트로 잘못 접수된 경우인 것이지요. 그래서 접수 시에 본인이 생년월일과 이름을 적어서 내면 접수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분증을 확인하여 접수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방법입니다.

 

같은 질병 상태에 대해 의사 간에 의견의 차이가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의학은 1+1을 넣으면 2가 나오는 분명한 과학이 아닙니다. 의외로 이렇게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말이죠.

같은 진단명이더라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치료 방법의 선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치료 방법을 선택했더라도 그 결과는 다를 수 있지요.

인체는 투명하게 얼어있는 각얼음과 같은 상태와 예측하기 어려운 허리케인 같은 상태의 어느 지점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환자가 어느 시점에 병원에 오느냐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대상포진 같은 질환은 초기에는 피부가 쓸릴 때 따갑다, 가렵다는 증상을 호소하며 피부에는 병변이 없습니다. 후기에는 신경절을 따라 수포가 잡히고 통증이 심하므로 진단을 놓치지 않겠지만(투명한 각얼음처럼), 초기에는 진단하기가 애매한 것이지요.

 

책에서 ‘엘리노어’라는 환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는 이 환자가 95% 확률로 봉와직염으로 보이지만, 뭔가 더 심한 질환일 것 같은 예감에 마취하에 진행하는, 흉터가 남는 조직검사를 하게 됩니다. 작가의 직감은 맞았고, 조기에 발견했기에 환자는 근육을 잃었지만 다리 자체는 보존할 수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계적 시스템 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할 수 없으리란 것을 예감합니다. 엘리노어의 진단명을 추정하는 기계적 시스템=공식이 있었다면 그 공식은 ‘봉와직염’이라는 답을 도출했을 것입니다. ‘왠지 모르게 찜찜한’ ‘사람의 감’을 어떻게 공식에 포함시키고 가중치를 줄 수 있다면 또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의학은 불완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최선의 방법으로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과 맞서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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