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불안사회 (한병철)

건강을위한 2025. 4. 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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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잃어버렸나?

 

 

교양서라기에는...어렵다. 내 독서록에서는 철학서로 분류.

 

독일어 원제는 <Der Geist der Hoffnung> 이고 DeepL 번역기로 돌리면 <The spirit of hope> 으로 나온다.

한국어 제목은 한병철 작가의 유명한 전작인 <피로사회>와 맥을 같이 하기 위해 <불안사회>로 정한 것 같다.

 

이 책은 희망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다.

 


 

꿈 없는 현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거기에는 새로운 것을 향한 열정, 가능한 것에 대한 열정, 새로운 시작을 향한 열정이 없기 때문이다. 미래 없이 열정은 불가능하다. 내일 없이, 미래 없이 자기 자신으로만 축소된 현재는 새로운 시작을 결의하는 행위가 지닌 시간성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한 현재는 주어진 것의 단순한 최적화, 심지어는 ‘눈앞에 있는 잘못된’ 것의 단순한 최적화로 전락한다. 의미를 부여하는 지평 없이 행위하기란 불가능하다. 카뮈가 반복해 강조한 행복, 자유, 지혜, 인간의 사랑, 우정, 인간성, 연대는 행위에 의미와 방향을 부여하는 ‘의미의 지평’을 만들어 낸다. 이들은 능동적 희망의 이정표다. 이들이 아니라면 ‘내가 태어나고 사람들이 수천 년 전부터 깊은 고통 속에서도 삶을 예찬하는 법을 배운’ ‘빛’을 향한 ‘신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러한 빛은 항상 위에서 내려온다. 

 

 

희망은 ‘호전적 정서’이며 ‘기치를 세운다’. 희망에는 행위할 결단이 내재해 있다. 희망은 행위하기 위한 도약의 힘을 펼친다. 수동적이고 가만히 있는 약한 희망과 능동적이고 행동하는 강한 희망은 구분되어야 한다. 수동적 희망은 실로 힘없는 단순한 소원에 불과하다. 행동하는 강한 희망은 인간이 활동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강렬해진다. 그것이 희망의 변증법이다. 절망이 지닌 부정적 성질은 희망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높이 오른 희망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여기에 희망과 낙관주의의 차이가 있다. 낙관주의에는 이러한 부정성이 없다. 절대적 희망은 깊은 절망 안에서도 다시 행위할 수 있게 해 준다. 희망은 의미가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충만한 상태다. 의미 있는 것에 대한 믿음만이 비로소 우리에게 방향과 딛고 설 곳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내가 좋아하고 즐겨쓰는 말!

 

 

 

희망은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그것에 의미가 있다는 깊은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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